제가 갑자기 연재 중단된 웹툰 안으로 들어갔다니까요? 19: 나의 여름은 언제나 (2024)

제가 갑자기 연재 중단된 웹툰 안으로 들어갔다니까요? 19: 나의 여름은 언제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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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놓고 말해. 손목 아프니까.”

“…너 그거 뭔데?”

“멍이잖아.”

“내가 지금 그거 몰라서 물어보는 거겠냐?”

누구한테 맞은 건데. 터질 거 같은 화를 애써 꾹 참아내는 목소리는 막 듣기 좋지는 않았다. 맞은 건 난데 맞은 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까지도. 분명 기뻐할 일이었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고, 같이 화내줄 친구가 있다는 건. 그런데 왜일까. 마음속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건 다른 것도 아닌 열등감이었다. 이 멍이 아버지한테 맞아서 생긴 거라고 하면 이동혁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이동혁한테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 속이 뒤틀린 나는 이런 생각 밖에 할 줄 몰랐다.

말하면 네가 뭐 어쩔 건데. 대신 때려주기라도 하게? 퉁명스러운 내 답변에도 이동혁은 전혀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그래줄 것처럼 굴었다. 어. 그러니까 말해. 단호한 목소리와 꽉 쥔 주먹은 이동혁의 모습이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분명 고마워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걸 아는데, 생각과 반대로 먼저 튀어나온 건 실소였다.

“아버지야.”

“뭐?”

“이제 말해 봐. 뭘 어떻게 할 건데?”

이동혁의 눈동자가 조금 전과 다르게 떨렸다. 아무래도 예상 못한 답변이 튀어나와서 그런 건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기껏해야 또래의 괴롭힘 정도라고 생각했겠지. 그래. 이동혁 같은 애들이 알 리가 없다. 정상적인 애정이 가득한 가정에서 하고 싶은 걸 지원 받으며, 꿈을 이루고 좋아하는 여자애와 잘되는 게 설정값인 애니까.

쪽팔렸다. 맞은 자국을 숨기려고 여름에 춘추복을 입고 다닌 내 모습도 그랬고, 그 노력이 소용없다는 듯이 보기 좋게 멍 자국들을 들켜버린 사실도 그랬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 치졸한 분노를 아버지가 아닌 이동혁을 향해 표출하고 있다는 게 제일 그랬다. 나는 여러모로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 했다. 이런 모습까지 아버지를 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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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가 널 왜?”

“그러게. 나도 몰라.”

이게 내 설정값이라던데. 이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내뱉지는 않았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 상관도 없는 애한테 충격을 줄 성격은 되지 못했고, 제노까지 얽힌 마당에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제 삶에 애정을 가진 이동혁은 아마 나와 다른 결의 충격을 느끼겠지. 그 애의 삶을 내 입으로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동혁은 다급한 표정으로 단순히 이번만 그런 건지, 아니면 평소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건지를 물었다. 상습적으로 그런 거면 자기가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신고든 뭐든 같이 해줄 테니까 하자고. 꿈같은 얘기였다. 신고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저번에도 그랬었으니까. 내가 잠깐 품은 반항심은 더 큰 분노로 돌아왔다. 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사람들은 아버지의 말 몇 마디에 그만 돌아가 버렸고, 나는 그날 평소보다 몇 배씩 더 맞았다.

“나라고 신고 안 해봤겠어?”

“…….”

“신경 써준 건 고마운데 지금은 바꿀 수 있는 게 없어.”

나 미성년자고 법적 보호자는 부모님이야. 성인이면 모를까. 현재로선 가출하지 않고서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동혁이 날 도와 어떤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결국 내 법적 보호자는 부모님이다. 혈연이라는 게 이렇게도 지독한 거다. 성인이 되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아마 내가 성인이 될 일은 없을 거다. 여주의 말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밴드부 대회가 우승하고, 3학년들이 졸업하면 끝이 나니까. 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됨과 동시에 이 세계도 막을 내리는 거다.

차라리 나도 나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해. 애들한테는 나 먼저 간다고 전해주라.”

눈물을 참는 데는 도가 텄다. 눈물이 고일 것 같은 때면 눈 감고 숫자를 센다. 어디까지 세고, 뭐 그런 건 없다. 그냥 눈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때까지 계속 숫자를 세는 거다. 그런데 어쩌다 몇 번, 눈물이 나보다 의지가 강할 때가 있다. 아무리 숫자를 세도 눈물이 틈을 비집고 나와 버린다. 그럴 땐 그냥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 둔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아마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이 와중에도 집에서 공부는 해야 한다고 들고 왔던 책들을 챙기러 도서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걱정과는 다르게 애들과 만날 일은 없었다. 나중에 여주로부터 들은 말이지만, 내가 급하게 나가는 모습을 애들이 봤다고 했다. 다행히 이동혁이 몸이 안 좋다고 막 둘러대 줬던 거 같다.

막 달렸다. 심장은 터질 거 같고, 몸은 막 뜨겁고. 이러다 어딘가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땀이 나고 난 뒤에야 발걸음이 겨우 멈췄다. 그런데도 나는 올라간 소매 사이로 멍 자국이 보일까 봐 옷소매를 끌어내렸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문자의 발신자는 이동혁이었다.

이동혁

아무 것도 못 도와줘서 미안

그래도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뭐든 들어줄 테니까

결국 나쁜 건 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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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민.”

“…….”

“잠깐 나 좀 보자.”

여름이 된 이후로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춘추복을 입고 교문을 통과하려면 왜 아직도 춘추복을 입냐는 질문이 따라올 게 분명했으니까.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귀찮고, 주변 사람들이 그 질문을 듣고 나를 힐끔거리는 것도 싫었다. 일찍 오면 그럴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이동혁은 대체로 종이 칠 때쯤에 교실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그것보다 늦게 들어온다. 늦게 들어올 때가 더 많아 대체로 여주랑 같이 벌 청소를 하는 편이고.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당연히 비어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온 교실엔 이동혁이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 듯했다.

“이거. 너 입으라고.”

어제 이동혁이 보낸 문자엔 따로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동혁이 사실을 알기 전과 후, 이 사이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이 생겼다. 단지 그 이유에서였다.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어느 정도의 각오를 했다. 화가 났을 거다. 내가 이동혁의 호의를 무시한 건 사실이니까. 분명 가시가 돋친 말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이동혁은 나한테 줄 게 있다며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고선 내게 건넸다. 하복과 팔토시였다. 뜬금없는 전개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이동혁은 내 손에 그것들을 쥐여주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 날씨에 무작정 춘추복을 입는 게 말이 되냐.”

“…….”

“조금 있으면 폭염이랜다.”

내가 보니까 다른 반 애들도 팔토시 쓰고 다니더라고. 아무 말 없는 거 보면 아마 쌤들이 이거 때문에 너한테 뭐라 하시진 않을 거야. 그리고 이건 내 하복이긴 한데, 축구하다가 잃어버린 줄 알고 샀다가 집에 있었던 적이 여러 번이라 옷 많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입으라고.

이동혁이 덧붙인 말에는 나를 향한 걱정과 배려, 애정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래.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조금 있으면 애들 오니까 빨리 가.”

“…….”

“이 엉아가 적당하게 줄여놨으니까 핏은 걱정 말고.”

눈물이 잔뜩 고인 내 눈을 보고 이동혁은 실없는 말들을 뱉었다. 이동혁 입장에서는 울음을 그치라고 한 말이었겠지만, 역효과였는지 오히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동혁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횡설수설 하다가, 이내 제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이렇게까지 감동 받으면 곤란한데. 결국 그 말을 듣고 소리까지 내며 막 울었다. 고마워. 울음 섞인 내 말을 들은 이동혁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내 어깨를 토닥여줬을 뿐이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내 주변에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만큼이나 좋은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는 걸. 그 사람들 중엔 이동혁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점부터 나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동혁 만큼은, 이곳이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모르게 해야겠다고.

그게 내가 걔한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

“나 이런 데 오는 거 처음이야.”

127 밴드가 공연을 한다. 꽤 큰 규모로 열리는 공연인데, 우리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끝나면 다 같이 밥도 먹자고 했다. 평일이었으면 못 오는 애들이 많았을 텐데, 다행히 주말이라 밴드부 멤버들 전부 다 참석할 수 있었다. 모두가 나재민의 참석 여부를 궁금해했었는데, 다행히 올 수 있다고 했다. 낮에 독서실에 있으면서 오늘 분량의 공부를 끝냈으니까 괜찮다고.

고삼인 김도영 역시 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하루쯤은 괜찮다며 공연을 보러 왔다. 어차피 오늘 하루 공부 안 한다고 수능 성적에 크게 영향 없어.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오전부터 학원에 계속 짱박혀 있다가 왔다고 한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오늘 하루 논다고 수능에 지장 없다고 하면서도 몸은 저절로 일어나서 책상 쪽으로 향하더라고. 흐뭇한 미소로 김도영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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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놀라?”

어깨를 두드린 건 김정우였다.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은 김정우는 조금 전까지 내가 시선을 두고 있던 쪽을 바라봤다. 왜. 도영이 뭐 했어? 김정우는 흥미 있다는 듯이 물어보며 눈까지 반짝였다. 솔직히 저렇게 눈을 반짝일 정도는 아닌데.

“아니. 그냥 나 고삼 때 생각나서.”

저거 말은 저렇게 해도 큰 결심하고 온 거다. 내가 딱 저랬어. 오늘 하루 놀아도 괜찮다고 하면서 불안해가지고 나가기 직전까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그랬거든. 인생 제일 열심히 살았을 때야, 진짜.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절대 못 해. 김정우는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너도 고삼 겪었을 텐데 뭘 그래. 그러니까 자긴 그렇게 까진 열심히 산 적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어. 나 수학 7등급 나왔을 걸? 기억도 안 나.

“오. 럭키 세븐인데.”

“아마 잭팟이었을걸?”

“잭팟?”

“국영수 다 7등급 나왔어.”

“그거 행운이 온다는 뜻이야.”

“글쿠나.”

시답잖은 얘기하다 보니 벌써 공연 시작할 시간이 다 됐다. 김정우는 뭔가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평소보다 들뜬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자기가 그린 캐릭터들이 실제로 공연하는 걸 볼 수 있어서 그런 거겠지. 작가들은 제 캐릭터에 많은 애정을 쏟는다니까 말이다. 김정우가 지금 느낄 감정들은 나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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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가 제일 기대돼?”

“음…. 난 민형이?”

그럼에도 모두가 보여줄 공연이 기대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기대되는 사람이 있긴 했다. 바로 이민형이었다. 이민형의 말로는, 현실에서도 밴드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름이 드림이라고 했지. 나중에 현실에 같이 나가면 공연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때보다 먼저 이민형의 연주를 보러 오게 된 거다. 솔직히 조금 기대됐다. 무대 위에 있는 이민형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행복할까? 그 감정 역시 나로서는 추측하기 어려운 거였다.

“걔가 현실에서 밴드 했다고 했잖아.”

“…어. 그치.”

“걔도 그리울 거 아니야. 그래서 공연하는 거 좋아할 거 같아서.”

그리고 자긴 얼마나 잘하길래 나한테 그렇게 뭐라고 했던 건지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겠어. 별로 못 하면 가만 안 둬야지. 장난 섞인 말을 덧붙였더니 김정우는 머쓱한 듯이 웃었다. 진짜 가만 안 두려고? 그러다 이내 웃음을 거두고는 물었다. 살짝 진지한 걸 보니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 같았다. 야. 진짜 그렇겠냐? 그제야 김정우는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대체 나는 어떤 이미지인 거야?

이윽고 공연이 시작됐다. 127 밴드 단독으로 공연하는 게 아니고, 여러 가수들이 순서대로 공연하는 거였는데 127 밴드는 중후반부 쯤 나온다고 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이 꽤 많았다. 꽤 긴장되겠는데,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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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나중에 이런 데서 공연하겠지?”

“우리가?”

“대회 말이야.”

생각해보니 대회가 정말 얼마 안 남았다. 겨우 잊고 있었는데 제노의 말로 인해 다시 대회에 대한 걱정들이 떠올랐다. 아. 밴드부 진짜 우승할 수 있을까? 이민형이 애써준 덕분에 그나마 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승할 수 있는 정도는 전혀 아닌데. 나 진짜 현실로 나갈 수 있나?

제노는 금세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보고 속내를 읽기라도 한 건지, 혹시 대회 때문에 걱정하는 거냐는 말을 꺼냈다.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잖아. 괜찮을 거야. 어쩌다 갑자기 위로 받는 입장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건네긴 했다.

“민형이가 현실에서도 밴드 했었대.”

“아. 진짜?”

“응. 저번에 말해줬어.”

제노 네가 도서관 간 날에 그랬었잖아. 왜 민형이만 밴드부가 아니라 127 밴드로 들어오게 된 거냐고. 내 생각엔 현실에서도 밴드 멤버였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 또, 생각해보니까 민형이까지 밴드부 인원으로 들어오게 되면 밴드부 인원이 너무 많아지니까 포지션 나누기도 애매했을 거 같고. 뭔가 일리 있지 않아? 내 말에 제노는 고갤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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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 보고 직접 완결을 내라는 거 치고는 꽤 친절하게 군다.”

“…그러게?”

제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여긴 우리한테 꽤 많은 도움을 줬다. 방금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이민형이 현실에서 했던 일들과 밴드부의 인원까지 고려해서 이민형만 127 밴드의 멤버로 만들어버린 것도 그렇고, 가끔 김정우한테 모종의 힌트들을 알려주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우리 세 명을 웹툰 속으로 끌어들인 것 치고는 정말 친절하게 굴긴 하네. 미안해서 그런가?

“그러면 우리 우승도 시켜주려나?”

“여주 너, 그렇다고 하면 연습 안 하려고 그러지.”

“티 많이 났어?”

“그러다 민형이 형한테 또 혼나겠다.”

제노의 말이 끝나자마자 127 밴드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저 멀리 무대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자마자 시선은 그쪽에 고정됐다. 공연 중후반부에 올라온다더니 왜 이렇게 일찍 올라오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시계를 확인해보니 아까보다 시간이 꽤 많이 지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얘기 하다 보니 시간 흐르는 줄도 몰랐네.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이민형이었다. 본격적으로 무대를 시작하기 전에 밴드를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평소와 다르게 긴장한 듯했다. 늘 여유 넘치는 모습만 봤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는 역시 긴장하는 구나. 차려입은 것도 그렇고, 평소랑 좀 달라 보인다. 왠지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 때 쯤, 공연장은 악기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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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다.”

제노에게 우리의 정체를 들키고 난 후, 그러니까 이민형한테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시점이었다. 그 후에도 나는 연습을 위해 월, 수, 금요일 마다 연습실을 드나들었고, 그 덕분에 이민형과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꽤 많았다.

넌 왜 밴드를 하게 된 거야? 한 번은 이민형한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김정우한테도 한 번은 던진 질문이었다. 너는 왜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던 거야? 하고. 다른 의도는 없었고, 정말 궁금했다. 뭔가를 하고 싶다고 결심할 정도로 좋아하는 게 없었기에 그저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간 나로서는 걔네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선택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듣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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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디에 속하고 싶었어.”

“…….”

“그래야 내 존재를 증명 받을 수 있을 거 같았거든.”

돌아온 대답의 의미는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더 묻지는 않았다. 뭔가 더 물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또, 사람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무대 위에 있는 이민형의 모습을 보니까 딱 한 가지는 알겠더라. 얘는 꼭 밴드를 했어야 했다고.

이민형은 무대 위에서 제 존재를 각인시켰다. 마치 자기가 여기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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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베이스 스승이 사실은 이 세계 최강의 실력자?”

“저건 또 무슨 컨셉이래?”

“무대 보고 감명 받았대.”

공연이 끝났다. 127 밴드가 준 초대표를 가지고 있던 우리는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기실에 있는 127 밴드는 평소에 학교나 연습실에서 보던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뭔가 연예인 보는 거 같아. 머쓱했던 느낌도 잠시, 이민형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주접이 튀어나왔다. 이동혁은 옆에서 무슨 컨셉이냐며 한 마디 던졌지만, 정작 자기도 감명 받은 얼굴을 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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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 표정이 왜 그래?”

“…저 죽을래요.”

이번 127 밴드의 공연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여기 음향이 생각보다 별로라고 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저번 공연에서는 음향 사고 때문에 공연이 지연된 적이 있다고도 하더군요. 혹시 127 밴드의 공연이 음향 사고 때문에 차질을 빚는 건 아닐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 관리자를 찾아내서 이런 식으로 관리할 거면 다음부터 공연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경고를 줘야 할까? 하지만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제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가히 최고였습니다. 이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요.

민재가 저렇게 말을 빨리할 줄 아는 애였던가? 대기실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가 당황한 눈치로 민재를 지켜봤지만, 민재는 여의찮고 정말 최고라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그러고 보니 민재가 127 밴드 팬이라고 했었지? 정말 좋아할 만한 무대긴 했다. 밴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도 가슴 속에서 뭔가 차오르는 걸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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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박수!”

이동혁은 한술 더 떠서 민재의 말에 박수를 치라며 호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정작 공연 끝낸 건 127 밴드인데 박수도 127 밴드가 쳤다. 그래도 분위기가 좋았으니 되긴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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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

“나 너무 감동이야….”

다들 시험 기간이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공연 보러 와줘서 정말 고맙고, 좋은 말해 준 것도 정말 고마워. 사실 그동안 음악 하면서 걱정이 많았었는데, 무대를 하면서 확신이 섰어. 오늘 하루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남을 거 같아. 나도 앞으로 너희 밴드부를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울게.

이태용은 울먹거리며 말을 뱉었다. 그 모습에 나도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갑자기 눈물 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이태용을 바라봤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마주하던 이태용도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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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넌 왜 울어…?”

“오빠가 그런 말을 하니까 눈물이 나잖아요….”

“흐어엉….”

“으헝헝….”

이태용과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를 껴안았다. 여주야…. 오빠…. 뭐가 그리 슬픈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대며 눈물을 흘렸다. 이전에 있던 어색함은 이미 날려 버린 지 오래였다. 정작 감동 받은 건 우리 둘뿐이었는지 주변에서는 킥킥대며 우리 둘의 사진을 찍어댔다. 특히 이동혁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아. 개웃겨 진짜.

저 이제 베이스 하기 싫다고 찡찡거리지도 않고…. 연습도 더 열심히 할 거고…. 대회 전까지 지금 연습하는 노래 다 익혀서 꼭 대회 우승 시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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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

“그러면 시험 끝나고 나서부터 평일엔 다 연습실 나오면 되겠다.”

이민형이 갑자기 치고 들어온 덕분에 내 감동은 가루가 되어 형체도 없이 날아가고 말았다. 공쥬 예전보다는 조금 늘었지만 아직도 부족해. 네 말대로 우승하려면 연습을 늘리는 수밖에 없지.

저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내 몸은 이태용을 껴안은 채로 굳어버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벌써 여기 들어와서 입방정으로 몇 번이나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는데 지금까지도 아무 말이나 하는 이 버릇을 못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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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화이팅…?”

얘기가 왜 또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거냐고~! 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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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옆을 떠나버린 그녀가! 나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며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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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너무나 애타게~ 기다려 왔던~ 그녀가 내게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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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좋아!!! 네가 와서 좋아!!! 너무나도 기다렸던 네가 와서 좋아!!!”

뒷풀이로 저녁밥을 먹고 난 후, 127 밴드 멤버들과 밴드부원들은 노래방으로 2차를 왔다. 인원 때문에 방을 두 개로 나눌까 했는데, 마침 엄청 큰 대형 룸이 딱 하나 남아 있다고 하길래 망설임 없이 그 방을 택했다.

있잖아. 제노야. 난 절대 노래 안 부를 거야. 여주는 처음 노래방에 들어올 때 분명 이렇게 말했다. 동혁에게 음치라고 놀림 받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점차 제 노래를 예약하자 여주의 시선은 슬그머니 리모컨으로 향해 있었고, 태일이 원키로 티얼스를 소화해내자 여주의 흥은 극에 달해 있었다. 방 마다 두 개씩만 들어 있던 탬버린이 모두 여주의 손에 쥐어진 채로 요란스럽게 휘둘리는 것만 봐도 답이 나왔다.

제가 갑자기 연재 중단된 웹툰 안으로 들어갔다니까요? 19: 나의 여름은 언제나 (22)

“탬버린만 흔들지 말고 여주도 한 곡 부르는 거 어때? 여주 노래 듣고 싶은데.”

딱 봐도 노래 부르고 싶은데 참고 있네. 보다 못한 재현은 결국 여주에게 노래를 부르라는 제안을 했다. 제노는 순간 여주의 광대가 치솟는 걸 목격했다. 하지만, 여주는 이내 놀림 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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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너 놀리면 내가 바로 뭐라고 할게.”

아까 대기실에 있었던 일 때문에 여주와의 친밀감이 확 오른 걸 느낀 태용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아.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어쩔 수 없네요. 여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태용의 제안을 수락하고는 바로 리모컨을 가져갔다. 10451. 번호까지 외웠다, 쟤. 노래 부르라고 안 했으면 서운했겠는데? 여주는 누군가가 뱉은 말을 애써 무시하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떳다!! 그녀!!

위치스 노 래

하양수 작 사

하양수 작 곡

제가 갑자기 연재 중단된 웹툰 안으로 들어갔다니까요? 19: 나의 여름은 언제나 (24)

“선곡 뭐야? 여주 쟤 몇 년 생이야?”

제노는 분명 제 옆에 앉은 태일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다행히 전주부터 화려했기 때문에 밖에 나가 서 있던 여주는 이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여주가 들고 있던 탬버린은 재민에게 하나, 태용에게 하나씩 건네졌으며, 여주는 전주를 듣자마자 무아지경으로 헤드뱅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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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야. 가서 음료수 마시고 싶은 거 사와!”

영호는 여주의 노래를 듣자마자 제노에게 돈을 쥐여주며 마시고 싶은 음료수를 사 오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음료수가 다 떨어졌다는 이유였으나, 사실은 저에게 드럼을 배우는 제노를 위해서였다. 이거 들으면서 절대 웃음 못 참아. 제노라도 내보내야 돼. 영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주와 제노의 우정을 향한 자그마한 배려였다고 할 수 있겠다.

시키는데 안 갈 수는 없지. 영호의 생각과는 다르게 제노는 여주의 노래를 더 듣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방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도 여주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 웃으면서 한 마디 했다. 와. 저 방 노래 레전드다. 거의 퉁퉁인데? 제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서 그 사람을 노려봤다.

“너도 알고 있잖아. 정우야.”

자판기에 도착한 제노는 어떤 음료를 살까 고민하고 있었다. 적당히 콜라 반, 포카리 반 이렇게 사가면 뭐라고 안 하겠지? 제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영호가 준 만 원짜리 지폐를 자판기에 넣었다. 그 순간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민형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 거다. 정우? 그러고 보니 둘이 아까 전부터 방에 없었던 거 같은데. 할 얘기 있어서 나간 거였나? 뭐 그럴 수도 있지. 제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저번이야 뭐, 제 귀에 들렸으니까 여주와 민형의 얘기를 들었던 거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여러 개의 방들에선 저마다의 노랫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솔직히 제노는 안 들릴 얘기를 엿들으려고 애쓸 정도로 두 사람에게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난 네 과오야.”

음료수를 다 뽑고 방에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아, 차가워. 음료수를 껴안은 제노는 민형이 내뱉은 저 말을 확실하게 들었다.

‘가오?’

고 생각했지만, 그건 제노의 착각일 뿐이었다. 정우 형이 민형이 형 앞에서 가오 잡았나? 설마 둘이 싸우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제노는 멈추지 않았다. 뭐,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겠지. 제노는 서둘러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주의 노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복도에는 여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왔어!!! 왔어!!! 그녀 내게 왔어!!! 너무나도 기다렸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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